4.3추모기간 미군함 기습 입항, 4.3 희생자 추모하는 제주도민 얼마나 우습게 알았으면...

지난 25일 9시 15분께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위치한 제주해군기지에 미국의 이지스 구축함 USS 스테뎀함(DDG-63)이 입항했다. 제주해군기지 개항 이래 처음으로 입항한 미군함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당혹스럽게도 미 군함의 입항 소식은 입항 단 하루 전인 24일 오전 보도자료를 통해 알려졌다. 갈등이 첨예한 강정에 미군함이 들어오는데 그 소식을 하루 전에 보도자료를 통해 급히 알린 것이다.

이번 미군함의 입항이 당황스러운 이유는 무엇보다 현재 제주도가 지난 20일부터 3주 동안을 제주4.3 추모기간으로 지정하고 미군정이 촉발시킨 이데올로기 광풍으로 인해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행정 기관, 교육 기관 등을 비롯 각 마을과 시민단체들이 현수막을 내걸거나 추모 행사를 열며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제주 전역이 추모의 열기로 뜨겁다. 제주 문화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최소한 4.3추모기간 만큼은 군사적 이슈들을 최소화하는 것이 도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제주도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러나 25일 미군함이 제주해군기지에 입항하면서 제주도민들이 정성스레 차린 제사상에 해군 측이 침을 뱉은 꼴이 되고 말았다. 제주 시민사회가 미군함의 입항 소식에 경악스러워 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미군은 제주도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제주인구 중 최대 8분의 1이 희생됐을 것으로 추산되는 제주4.3의 단초를 바로 미군정이 제공했다. 해방 후 제주는 실직난, 생필품 부족, 미곡정책 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제주도민들은 일제 경찰 출신들이 미군정 경찰로 신분을 바꾸는 등 친일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점, 미군정 관리들의 갈취 행위 등에 대해 분노했다.

견디다 못한 제주도민들은 결국 1947년 3.1절 현 북초등학교에 모여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미군정 경찰은 민간인을 향한 발포사건을 일으키고 만다. 그러나 미군정은 사과는 커녕 12명의 사상자를 낸 3.1절 발포사건을 정당화하기 급급했다. 이에 대한 항의와 이어진 3.10 총파업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미군정은 이후 “제주도 인구의 70%가 좌익 동조자”라면서 제주도를 '붉은 섬(Red Island)‘으로 규정하고 민족주의·민중운동 진영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에 ’탄압이면 항쟁이다‘라고 외치며 4.3 봉기가 발발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제주4.3 관계자들은 오래 전부터 미국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오고 있다. 2016년 6월 10일에는 양윤경 4.3희생자유족회장, 양성주 4.3유족회 사무처장, 양영수 천주교 제주교구 신부, 강호진 제주주민자치연대 대표 등은 미국 상원의회를 찾아가 미국 정부가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청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 주교 역시 기회가 될 때마다 제주4.3에 대한 미국의 책임있는 행동을 주문하고 군사기지가 평화와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다면서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인한, 동북아의 긴장을 우려해왔다.

강우일 주교의 우려는 현재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사드(THAAD) 배치로 인한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이 첨예해지며 국가간 갈등으로 치닫고 지역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제주는 군사적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이지스함 입항에 반해하는 시위를 펼쳤다.

고권일 제주해군기지반대대책 위원장은 25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국민들이 반대해도 결국 사드를 밀어붙였듯이 제주에 줌월트를 배치하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볼 수밖에 없다. 사실상 미군기지나 다름없다”면서 “중국과의 갈등 구조가 공고해지면 제주도는 동북아의 화약고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이번 미구축함 스테뎀의 입항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제주해군기지 측 관계자는 25일 오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해군)도 스테뎀함이 언제 오고 언제 나가는지 알고는 있지만 실전에 나서기도 하는 미군 측이 비밀 유지를 원하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미군의 사드 배치로 인한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으로 인해 경제적 위기가 심각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도민들의 알 권리보다 미군의 비밀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하는 해군은 누구를 위한 해군인지 알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해군 당국은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지스함이 한미 양국 해군 간의 우호협력 관계를 증진하고 한국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입항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문화 체험이 그처럼 군사적 보안을 유지해야만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4.3 추모기간을 지정한 뒤 '제주(祭主)' 역할을 해야 할 원희룡 도정이 4.3추모기간에 기습적으로 입항한 미군함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자, 제주도가 동북아의 화약고로 자리 잡아가는 데 대해서 제주도정이 별다른 경각심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제주도정의 무대응으로 볼 때 해군 측의 보도자료가 나오기 전까지 미군함이 제주에 입항한다는 사실에 대해 눈치조차 채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미 해군이 들어오려고 마음먹을 때 제주도민들의 뜻과 상관없이, 게다가 심지어 제주도민 모르게 들어올 수 있다면 누가 제주도의 진짜 주인인지 쉽게 말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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