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100주년 -1

기미년(1919) 3·1운동보다 약 5개월 먼저 제주 서귀포 법정사에서는 스님과 지역주민이 중심이 된 항일운동이 있었다. 이름하여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내년 2018년이면 100주년을 맞는다. 서귀포신문은 제주법정사 항일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정명(正名)과 함께 그 역사적 의의를 조명하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의 개요

2.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의 목적

3.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참여 마을과 주민

4.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의 왜곡

1.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의 개요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은 1918년 10월 7일, 제주도 도순리 법정사를 중심으로 하여 인근 마을 주민 700여명이 일본인의 축출과 국권회복을 주장하며 일으켰던 제주도내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다.

내년 2018년이면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100주년이 된다. 1918년 제주도민의 항일운동 중 최대 규모가 참여한 항일운동이면서 일제의 탄압에 의해 혹세무민의 난리로 폄하되어 오랜 세월을 지났고 2000년대에 들어서야 항일독립운동으로 조명되기 시작한 우리의 역사이다. 역사는 기억해낼 때 그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아름다운 제주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오늘 제주에 사는 우리의 의무라는 마음으로 법정사 항일운동을 기념할 것을 제안해본다.

1918년의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은 기미년 삼일운동보다 먼저 일어난 항일운동이었고, 주도자들은 삼일운동 참여자들보다 무거운 형을 받아 수형생활을 할 정도로 일제의 탄압의 강도를 드러내주고 있는 항일운동이기도 하다. 법정사 주지인 김연일에게는 징역 10년형을 구형하는 등 참여자 46명에게 형을 선고하였다.

참여자들에 대한 처리 과정을 보면 일제는 경찰의 수사단계를 건너뛰고 검사분국에서 사건 처리하였을 뿐 아니라 당시 제주도에도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 검사분국이 1912년에 설치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정사 항일운동 참여자들은 목포로 이송하여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검사분국에서 조사하였다. 일제가 법정사 항일운동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면이다.

재판 전 가혹한 조사 과정에서 사망하는 사람이 생겼고 수감 중 옥사한 사람도 있었다. 일제의 고문으로 인해 신체적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도 있었고 해방 될 때까지 일제의 감시로 활동에 제약이 가해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한 일처리는 바로 거사 당일 국권회복을 표방하고 중문경찰서를 불 지르고 일본인을 구타하는 등의 적극적인 항일투쟁의 모습을 빨리 차단시켜 더 이상의 파급을 막으려했던 일제의 적극적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법정사 경내 의열사.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은 도순리 법정사의 승려들이 중심이 되고 도순리 인근 마을 주민 700여명이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하여 거행한 항일운동이다. 법정사 주지 김연일 등 법정사 승려들은 1914년경부터의 법정사 활동에서부터 일본의 국권 침탈의 부당함을 신도들에게 설명하여 항일의식을 심어주었다. 거사 실행 6개월여 전부터는 군대조직과 같은 거사를 위한 조직을 구성하였다. 이들의 거사 목적은 국권회복임을 천명하며 독립을 위해 일본인 관리와 상인을 제주도에서 쫓아내겠다는 요지의 격문을 작성하였다. 곤봉, 깃발 등을 사전에 제작하고 화승총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계획적인 사전 준비 끝에 1918년 10월 7일 새벽 거사가 실행되었다. 법정사 예불에 참석하였던 34명의 선봉대가 도순리 법정사를 떠나 하원리 월평리 등을 거쳐 중문리에 이르렀을 때에는 인근 마을에서 동조하여 참여한 주민이 700여명이었다. 거사 현장의 선봉대장 강창규의 지휘 아래 항일운동 참여자들은 전선과 전주를 절단하고, 일본복장을 하고 지나가던 일본인 일행을 몽둥이와 돌멩이로 때렸으며 중문리 경찰관 주재소를 불태웠다. 총으로 무장한 서귀포 경찰관 주재소 기마 순사대의 공격으로 참여자들은 흩어지게 되었다. 참여자 중 66명이 검거되고 법정사는 불태워졌다.

일제는 사건이 종결된 후에도 법정사 항일운동의 파급을 우려하여 항일 독립운동의 목적을 개인적 영달을 위한 사교도의 혹세무민으로 매도하였고 참여주민의 숫자도 700여명에서 300여명으로 축소 보도하는 등의 행태를 보였다.

항일운동으로 평가된 이후 현재, 김연일 등 법정사 항일운동 참여자 28명에게 건국훈장이 추서되고,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는 제주도지정문화재 기념물 제61-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의열사를 건립하여 법정사 항일운동 참여자를 추모하고 있다.

한라산 둘레길 동백길코스는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에서 시작한다. 돌무더기만이 건물의 형태를 증명해주고 있는 법정사터에 서서 백여 년 전의 그 함성의 짜릿함을 상상하는 것으로 역사를 기억해내는 일을 시작해보면 좋겠다.

한금순 / 문학박사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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