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수 / 시조시인

  2009년, 일본 NHK 「무연사회 프로젝트」특별취재팀이 관보 등을 단서로 일본 전역을 돌면서 혼자 살다 죽은 이들의 흔적을 쫓은 결과, 신원이나 연고자를 확인할 수 없는 사망자는 연간 3만2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뒤늦게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으나 거두어줄 이 하나 없는 죽음을 두고 일본에선 ‘무연사(無緣死)’라 하고 무연사가 만연한 사회를 무연사회라고 했는데 그 이름은 일본 특별취재팀이 붙였다. 

  홀로 사는 사람들의 인생을 추적하며 사회안전망의 허점을 진단한 결과물이 2010년 1월에 방송되었고, 책으로도 출간되었다. 방송 이후 가족을 대신해 유품을 정리해주는「특수 청소업」이라는 신종 사업이 생겼고, 젊은 세대에 무연사의 공포가 퍼져가고 있는 어두운 현실을 현장감 있게 잘 그렸다는 평을 들었다.

  방송에 나온 한 업자는 지자체 의뢰로 행려병자의 하청을 받아 일하고 있는데 화장 건수가 10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고 말했다. 지자체 역시 거두어갈 사람이 없는 시신 급증으로 인해 신속한 대응도 어렵고 멀리 가족이 살고 있어도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다는 이유로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부모의 유골을 집에 버려둔 채 실종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했다.  

   그럼 우리나라는 괜찮은 걸까? 아니다. 최근 석달 새 부산에서만 26건의 고독사가 발생했다. ‘고독사’는 사회통념상 사용되는 용어인데 홀로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게 되어 오랫동안 시신이 방치된 후 발견되는 경우를 말한다. 부산의 한 시민단체에서 고독사를 분류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26명 중 남성이 22명이고, 65세 이상 저소득 독거노인일 거라는 고정관념과는 달리 사망자 중 17명이 중·장년층이었다. 무엇보다 알코올 의존 비율이 최소 61%이상 차지했다. 사망자가 비교적 젊은 연령대라도 식사 대신 알코올 섭취로 영양결핍이 진행되어 죽음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알코올 의존이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고독사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실직 → 미혼(혹은 이혼) → 알코올 의존 → 죽음으로 이어지는 고독사의 패턴이 이상하게도 자살의 패턴과 많이 닮았다. 노인도 아니고 왜 최근에 중·장년층 고독사가 많아진 걸까? IMF 경제위기를 겪게 되면서 지속적인 장기실업 상태가 가족의 해체를 불러오고, 노동시장에 편입되지 못해 알코올에 의존하게 되고, 자식과 부모도 부양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서 가족, 이웃, 사회와 단절되어 살다가 결국 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신영복 선생은 <더불어숲>에서 우리에게는 서로 나눌 수 있는 기쁨이나 슬픔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책을 마무리하며 남긴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는 구절은 무연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끝내 풀어야할 숙제다.

세상에 명성을 떨치던 정치가, 예술가, CEO라 할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다 내려놓아야 한다. 사회복지업무를 하면서 가족이 있지만 무연고자로 처리되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오랫동안 연락도, 왕래도 없었으니 행정에서 알아서 해 달라고... 살아서도 외롭더니 죽음조차 외로운 그들의 삶을 대하면서 참 가슴이 먹먹했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나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통계조차 없어서 원인이나 대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65세 이상 독거노인들로 한정된 복지정책을 중장년층까지 포괄할 수 있는 정책수립이 필요한 것 같다.   

  제주는 예전부터 제사나 잔치 떡을 이웃과 나눠먹던 풍습이 있었다.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끼리만 나눠 먹는 게 아니라 동네 어르신 몫이 따로 있었다. 대나무를 잘게 쪼개어 납작하게 만든 그릇인 ‘차롱’에 빙떡이나 제사떡, 옥돔, 과일 등을 차곡차곡 담아서 집집마다 전달을 했는데 나도 어릴 적엔 ‘차롱’ 심부름을 꽤나 다녔었다. 특히 100세 넘은 할머니댁에 다녀 올 때면 어머니는 꼭 할머님 안부를 묻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온 동네가 고령의 어르신을 돌본 셈이다. 아저씨 혼자 사는 이웃집에도 돌담 너머 ‘차롱’이 왕래했는데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그립고 정겨운 모습이다. 차롱문화가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아마도 부산과 같은 고독사는 없었으리라...

  며칠 있으면 추석(秋夕)이다.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명절이 되겠다. 모처럼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송편도 빚고, 음식도 나누며 수확의 계절을 누리는가하면 누군가는 홀로 외롭고 어두운 명절을  맞이하기도 하겠다.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역 내에서 최소한의 배려가 필요하겠다.   

  미국의 유명한 여성 MC 오프라 윈프리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번 추석에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어릴 적 차롱에 음식을 나눠먹던 모습을 기억하면서 가까운 이웃과 명절 음식도 나누고, 안부도 묻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석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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