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꿈꾸던 세상이 되었나요?

뜨거웠다. 네 번의 공연을 연달아 마치고 녹초가 된 배우의 눈빛도, 소회를 밝히는 연출의 목소리도, 박수를 치는 관객의 두 뺨도 한껏 달아올랐다. 연극은 뜨거움의 이유를 사랑이라 말했다. 

한 청년의 짧은 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고향, 제주도를 사랑한 청년 故 양용찬(1966~1991) 열사.

 

"나는요, 커서 봉이 김선달처럼 되고 싶어요."

 

수줍음이 많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부모형제의 사랑을 받고 친구와 우애를 다지던 소년이었다. 고향 마을과 한라산을 사랑하는 이웃이었다.

형을 통해 누이를 통해 친구를 통해 일기장을 넘기듯 청년의 짧은 생을 들여다본다. 그가 개발과 폭력이라는 무지막지한 벽 앞에 설 때까지.

 

“내 나이 18세, 내일 모레면 19세.

18년 동안 보살펴 주신 부모님께 죄스럽다.

18년 동안 후회 하나로만 보낸 것을 생각하니. 그렇다.

우리의 앞을 가로막을 것이 그 무엇이 있는가?

저 바다의 파도처럼 끊임없이 인내를 가지고 모든 일에 부딪치리라.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될 인재가 되지는 못할지언정

인간 기생충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그는 외국 농·수산물을 개방 수입하는 우루과이 라운드(UR) 무역협상과 관광 개발이란 미명 아래 제주도개발특별법에 열렬히 반대했다. 그리고 1991년 11월 7일 서귀포 시내 건물에서 분신 투신했다. 유서에는 절절한 심정과 결의를 꾹꾹 눌러 적었다.  

 

'나는 우리의 살과 뼈를 갉아먹으며,

노리개로 만드는 세계적 관광지,

제2의 하와이 보다는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써,

생활의 보금자리로써의 제주도를 원하기에

특별법 저지, 2차 종합개발계획 폐기를 외치며

또한 이를 추진하는 민자당 타도를 외치며

이 길을 간다’

 

연극은 그의 친구를 화자로 내세운다. 이십여 년이 흘러 제주로 돌아온 친구는 다시 그날의 불꽃 앞에 마주선다. 친구의 고향은 물 좋고 살기 좋아 제일강정이라 불렸다. 실제 고권일 강정마을 부회장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실제와 허구,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잔인한 역사는 반복된다.

스물 여섯 청년의 목숨을 두고 눈 하나 깜짝 않던 권력은 강정 앞바다를 파헤치고 시멘트를 퍼붓는다. 그가 사랑한 제주의 오름 대신 쓰레기 산이 쌓여간다.

 

“우리는 결코 세계적인 제주를 원하지 않습니다.

제주민에 의한 제주민을 위한 제주다운 제주를 원할 뿐.”

 

 

▲무대에 올라 관객에게 연출의 변을 전하는 방은미 

이 연극은 문화 예술 단체 ‘구럼비유랑단’의 창단 작품이다. 방은미 연출은 의도적으로 제주도개발특별법과 강정해군기지를 오버랩한다. 양용찬 열사의 1991년을, 2007년 강정을, 2017년 성산을 지그재그로 오간다. 관객은 열사의 뜨거운 목소리를 통해 구럼비 앞바다와 강정마을을 본다. 제2공항을 앞두고 단식투쟁을 이어가는 성산주민들을 본다.

제주도개발특별법은 제주국제자유도시를 불러왔다. 특별법을 주도한 민자당(민주자유당)은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을 거쳐 자유한국당-바른정당에 이어졌다. 제주도 땅은 토건 세력의 주무대가 되었다. 흙이 모자라 공사를 못한다는 우스개소리가 현실이 되었다. 해군기지는 밀고 들어왔고 제2공항까지 예고됐다.

배우 양승한은 이 무거운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무대 위를 펄펄 나른다.  1인극 <너, 돈키호떼>에서 쌓인 내공이 빛을 발한다. 

<사랑 혹은 사랑법>은 이제 첫 삽을 뜬 초연이다. 무거운 이야기였다. 아픈 이야기였다. 앞으로 더 많은 세대의 공감을 얻기 위해 더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극의 마지막, 배우는 이렇게 묻는다 .

 

"여러분, 제주도를 사랑하시나요?"

 

우렁찬 박수와 환호로 관객은 답변했다. 그 사이, 잠시 생각에 빠진다. 사랑은 왜 이리 어려운 걸까? 극장을 빠져나오며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 봤다. 둥근 달이 떠올랐다.

아. 사랑은 이토록 뜨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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