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나무의 문화사 9

한스 바이디츠의 식물 세밀화

브룬펠스는 1488년, 독일에서 태어나 신학자, 물리학자, 식물학자로서 마인츠와 슈트라스부르크의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연구생활을 하다가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수도원을 뛰쳐나온 인물이다. 교회사에 대한 그의 저작은 후에 루터 및 츠빙글리와 논쟁을 일으키게 되며, 결국 브룬펠스는 신학자로서의 경력을 포기하고 1530년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한다.

브룬펠스는 의학 연구에 포함되는 약초 연구를 병행하면서 다년간의 작업 끝에 식물의 의학적 가치를 넘어서서 식물 그 자체를 연구하는 근대 식물학의 탄생을 가져왔다. 또한 그의 작업에 동행한 화가 바이디츠는 식물도감에 몰두함으로써 식물의 세밀화라는 르네상스 예술을 만들어 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보급 덕택에 르네상스기의 유럽은 독일을 포함해 전 유럽에서 같은 방식으로 인쇄된 같은 식물도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놀라운 시기에 뒤러와 그의 제자였던 화가 바이디츠가 생생하고 사실적인 소묘로 많은 식물 그림을 남겨 자연과학자 못지않은 업적을 식물세계에 남긴 것이다. 이들은 형태들을 대단히 사실적인 세밀화로 그려내어 식물의 개별 표본을 만들 수 있도록 선행 작업을 한 셈이다. 그림이 글보다 더 많은 업적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오토 브룬펠스의 집필과 바이디츠의 그림으로 편집된 이 책은 유럽에서 체계적인 식물 연구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유럽 각지에서 개별적으로 연구되던 작업들이 이 책의 그림을 통해서 식물계 전반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공통적인 접근 방법이 시작된 것이다. 인쇄술을 통한 매체 혁명은 성서의 출판을 가속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똑 같은 식물 그림을 빠른 속도로 유럽 전역으로 확산시켰다. 따라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특별히 식물연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식물 연구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식물의 세밀화가 식물 자체를 의미 있는 연구 대상으로 분류하도록 했고, 또한 식물 연구에 대한 체계적인 방식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독일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까다로운 취향은 그의 제자로 하여금 그림을 인쇄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기법을 발전시키도록 하였다. 그런 까닭에 독일의 인쇄업자와 화가들이 신뢰할만한 최초의 의학서와 식물도감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르네상스 예술의 중심은 이탈리아였지만 인쇄업과 출판업은 독일에서 더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었으며, 이 현상은 식물도감 같은 출판의 형태로 나타나게 하였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