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자연 & 사람 그리고 문화-23

최평곤 작품. '파랑새'

 2011년 딱 이맘때, 나는 뉴욕하고도 맨하탄에 있었다. 뉴욕주립대학에 교환교수로 간 선배의 초청으로 ‘놀러’ 간 것이다. 사회학을 전공한 선배는 다음과 같은 말로 나로 하여금 모든 일정을 접고 비행기를 타게 했다.

  ‘여긴 미국이라기보다 세계라고 할 수 있어. 먹을 것은 싸고 인건비는 비싸니까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드는 거야. 또 접근성이 좋으니까 유엔본부를 비롯하여 월가, 소호(허드슨강 남쪽이라는 뜻) 예술거리 등 국제적인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된 거지. 다양성을 체험하기에는 딱 좋은 곳, 따라서 반드시 네가 와서 봐야 할 곳, 방값이 장난이 아니다. 나는 맨하탄 중심가 지하철 역 근처에 집을 얻었어. 100년 된 지하철,  월정승차권으로 한달 내내 무제한 이용, 이 찬스 놓치지 마라.“

 결론부터 말하면 그 찬스를 놓치지 않은 나는 평생 가는 귀한 깨달음을 얻었고, 그 결과 삶의 질이 상당히 높아졌다. 내가 맨하탄에 도착한 때는 크리스마스 시즌 오픈 무렵, 도시 전체가 잔치집 분위기로 들떠 있는데 중의 압권은 공연. 브로드웨이에는 라이온 킹, 빌리 엘리엇, 태양의 서커스, 위키드 등 세계의 화제가 되는 연극 공연들이 펼쳐지고 있었고, 그것을 보러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표값이 한 장에 보통 15만원, 더구나 표구하기가 별 따기. 선배의 딸과 나의 딸이 얼리버드(조조할인)표를 잡느라 컴퓨터에 매달려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극작가인 선배의 딸과 무대미술에 관심 있는 나의 딸, 그리고 다양성의 중심에 도전하는 선배와 나, 모녀 두 셋트가 흥분으로 추위를 이기며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 앗 이건 뭐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조조할인은 숫자만 정해져 있고 좌석은 미정, 따라서 선착순으로 그 중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이었다. 비싼 돈을 내고 지정석을 산 사람들이 먼저 다 들어갈 때까지는 기다려야 했다. 역시 돈이 최고인 사회였다. 비행기를 탈 때 앞자리 비싼 표 승객을 먼저 태우는 것과 닮았다.

 솔직히 나는 공연이 절실하진 않았다. 표구하기 전쟁에 이상한 전투 의지가 생겼을 뿐. 그러나 공연을 보면서 나는 없는 돈을 쪼개 공연을 봐야하는 이유를 절절히 깨달았다. <빌리  엘리엇>은 탄광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소년이 미국의 최고의 전설적인 발레스타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실화에 근거한 연극으로, 바닥에서 계단이 솟구쳐 이층방이 되고, 흐름과 연기가 매끄럽기 그지없고 스토리는 완전 감동, 20년 가까이 계속되는 장수 레퍼터리일 수밖에 없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데 용궁에서 돌아온 어부마냥 현실감이 없었고 몇일 동안 그 장면들이 생각나면서 신이 나고 삶에 활력이 생겼다.

 두 번째 공연 표구하기는 육탄전쟁이었다. 두 딸이 겨울밤에 몇 시간 현장에서 줄을 서서 ‘할인표’를 구해왔으니. 태양의 써커스는 눈썰매 타는 무대장치와 겨울동화라는 스토리텔링이 완전 내 취향저격이었다. 공연을 보고 나오는데, ‘너무 행복해’라는 소리가 내 입에서 저절로 나왔고 몸과 마음이 동시에 풀려서 안 추던 춤이 저절로 나왔다.
‘예술의 기운이 이런 거구나’
5주간의 맨하탄 체험 이후 나는 가능하면 틈을 내서 예술공연을 보러 다녔다. 서울 예술의 전당 유명 발레공연은 3천원이면 맨 뒤에서라도 볼 수 있었다. 무대위 발레리나가 손가락 만하게 보이지만 멋진 오케스트라와 아름다운 율동은 고스란히 즐길 수 있다.

 서귀포는 인심 좋게 시에서 지원하는 무료공연과 무료전시가 정말 많다. 서귀포 신문에 나는 것만 보아도 일주일에 두어 개는 볼 수 있다. 예술의 전당, 이중섭 미술관, 관광극장에는  빼곡하게 행사가 차 있다. 돈을 낸다 해도 만원 정도 소액이다. 그런데 늘 자리가 많이 비어있다. 태양의 서커스 공연장에 비싼 요금의 몇 천 석이 한 자리도 비지 않고 꽉 차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빈자리 하나하나가 아깝기 짝이 없다. 삶의 좋은 기운을 얻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텐데...     

 원래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게 사람의 심리이고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같은 말도 남이 하면 귀한 정보가 되고 부모가 하면 귓등으로 흘려보낸다. 가깝다고, 자기 동네는 아무리 멋진 게 있어도 아무 때나 갈 수 있다고 하여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못가본다. 멀리서 비행기 타고 온 사람들은 다 들러보는 서귀포의 명소를 여태도 못보고 공연이나 전시회는 놓쳐버린 경험이 한번이라도 있는 분? 손들어 보세요.

 지금 제주도에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습니다. 송악산 아래 4.3유적지, 일제 강점기 유적 알뜨르비행장 일대에 가보세요(12월 3일까지 제주비엔날레 종료 이후에도 일부 작품 전시 유지). 심방은 사실 동네 심방이 제일이죠. 내 사정, 동네 사정 다 헤아리고 가깝고 쉽게 오갈 수 있으니 최고 중에 최고 아닙니까?  
                                                                                       글·오한숙희 / 여성학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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