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고전 맛보기⑦]E.H. 카의 (Edward Hallett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

And this reciprocal action also involves reciprocity between present and past, since the historian is part of the present and the facts belong to the past. The historian and the facts of history are necessary to one another. The historian without his facts is rootless and futile; the facts without their historian are dead and meaningless. My first answer therefore to the question 'What is history?' is that it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reciprocal : 상호간의, reciprocity : 호혜, futile : 헛된, 소용없는

그리고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분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이 상호작용은 과거와 현재사이의 상호관계를 포함한다. (역사적)사실을 갖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어 허망하며 자신의 역사가를 갖지 못한 사실은 죽어 의미가 없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관계의 과정, 즉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E.H. 카(Edward Hallett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 표지.

‘역사란 무엇인가?’를 집필한 카(Edward Hallett Carr, 1892~1982)는 정통 역사학자도, 저명한 학자도 아니었다. 런던에서 태어나 캠브리지대학을 졸업한 후, 영국 외무부에서 20년간 근무했다. 이후 타임즈(The Times)에서 6년을 근무해 경력 풍부한 정치학자였다.

카는 뒤늦게 역사학에 매진해 ‘역사란 무엇인가?’를 출간했고, 전 세계 젊은이들의 열광적 지지를 얻었다. ‘역사란 무엇인가?’외에도 ‘소련사’와 ‘러시아 혁명’, ‘볼세비키혁명, 1917-1923’ 등 소련사와 관련된 집필로 크게 인정받았다.

카는 1961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G.M.트리벨리언 강좌'에서 강의한 부분의 원고를 바탕으로 그해 제1판을 출간했다.

책은 ▲역사가와 그가 다루는 사실과의 관계 ▲사회와 개인 ▲역사와 과학 그리고 도덕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진보로서의 역사 ▲인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예측 등 6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소개한 대목은 1장(역사가와 그의 사실)의 마지막 단락에 해당된다. 카는 역사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역사가의 시각으로 조망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카는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대한 기록’이다”라는 부르크하르트의 말을 인용한다.

부림사건을 다룬 영화 ‘변호인’에서 검찰과 변호인이 ‘역사란 무엇인가?’와 관련해 불온서적 논쟁을 벌이는 장면 때문에도 책은 더 유명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삼았다는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분)는 검찰이 용공의 증거라고 제시한 13권의 ‘불온서적’을 구해 읽은 후 피의자들이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은 조작됐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법정에서 영국 외교부의 공식 답변문서를 공개하며 역사학자인 E. H. 카가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그의 책 '역사란 무엇인가?'가 용공서적도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렇다. 실제로도 책은 다 훑어봐도 저자가 공산주의자이거나, 책이 불온하다는 근거는 찾기 어렵다. 조작을 통해서라도 불온을 찾기에 혈안이 됐던 부조리한 권력이 있었을 뿐이다.

최근 우리사회 일각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여전히 북한군과 연계설을 주장하고 박근혜 국정농단 사실도 부정하는 이들도 있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는데, 이런 명제가 성립되려면 과거를 들여다보는 현재의 맑은 눈이 있어야 한다. 역사적 사실을 들여다볼 맑은 눈이 없다면, 모든 게 ‘뿌리가 없고 허망하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스무 살에 읽은 책을 쉰 살 넘어 다시 읽었다. 당시와 세상도 많이 변했고, 내 심장도 그만큼 무디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스무 살 젊은 시절처럼 심장이 뛰지는 않았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