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고전 맛보기(21)]그레이엄 그린(Henry Graham Greene)의 <사랑의 종말>

And all that time I couldn’t work. So much of a novelist’s writing, as I have said, takes place in the unconscious those depths the last word is written before the first word appears on paper. We remember the details of our story, we do not invent them. War didn’t trouble those deep sea caves, but now there was something of infinity greater importance to me than war, than my novel : the end of love. That was being worked out now, like a story : the pointed word that set her crying, that seemed to have come so spontaneously to the lips, had been sharpened in those underwater caverns. My novel lagged, but my love hurried like inspiration to the end.

그래서 나는 그동안 내내 일을 할 수 없었다.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소설가의 창작 대부분은 무의식중에 이뤄지는 법이다. 이러한 심연 속에서 첫마디가 종이 위에 쓰이기 전에 마지막 말이 쓰이는 법이다, 우리는 우리 이야기의 세부를 기억하는 것이지 그것들을 꾸며내는 게 아니다. 전쟁도 그 같은 깊은 바다동굴을 방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나에게는 전쟁보다도, 내 소설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어떤 무한한 것이 있다. 사랑의 종말이다. 그것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작업되어 나오고 있었다. 사라를 울려버린, 너무도 자연스럽게 입술로 튀어나올 것처럼 보이는 날카로운 말이 그 수중동굴들 안에서 날카롭게 날이 갈리고 있었다. 내 소설은 뒤에 쳐졌지만 나의 사랑은 종말을 향해 계시를 받은 것처럼 달음질했다.

헨리 그레이엄 그린(Henry Graham Greene)은 1904년 영국의 하트퍼드셔 지방 버컴스테드라는 마을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에 입학해 유럽 근세사를 전공했는데, 생활의 무료함을 이기지 못해 권총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22세에 카톨릭에 입교하고 최초의 소설 <내부의 사나이>를 발표해 호평을 얻었다. 그의 소설은 선과 악, 은총과 죄악은 서로 변증법적으로 보상한다고 내세운다. 사랑과 미움, 정의와 부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고, 가장 위대한 성인이란 보통 사람 이상으로 악에의 가능성을 지지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랑의 종말>은 2차 대전이 극에 달했던 영국 런던을 무대로 한다. 소설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진행되는 여자주인공인 사라(Sarah Miles)와 남자주인공인 밴드릭스(Maurice Bendrix)의 불륜과, 그 속에서 진행되는 주인공들의 심리 변화를 다루고 있다.

작품은 5부로 구성됐다. 1부와 2부는 일인칭 화자인 밴드릭스라는 작중 소설가의 시각에 의해서 전개되고, 3부는 밴드릭스와 정부인 사라라는 여성의 개인 일기장 내용이 소개된다. 4부와 5부에서는 다시 밴드릭스의 서술이다.

벤드릭스는 무신론자들이며 중년의 이성적인 소설가인데 고급관리인 헨리의 부인 사라와 불륜 관계를 맺게 된다. 벤드릭스는 자신과 사라의 관계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증오한다.

그는 사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남편 헨리를 증오했다. 헨리 역시도 아내와 불륜에 빠진 벤드릭스를 증오할 것이다. 작가의 시각이 그러하듯, 사랑과 증오는 동전이 양면과도 같다.

벤드릭스는 사라의 회생적인 사랑을 경험한 후, 이성의 두터운 막을 뚫고 점차 감성적인 사람이 된다. 그리고 끝내는 사라의 사랑과 신앙에 변화를 받아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신앙을 받아들였다.

사라 역시도 벡드릭스와의 정사에 눈이 멀었다. 심지어 남편이 앓아누워 있는 바로 옆방에서도 벤드릭스와 정욕을 불태웠다. 그런데 벤드릭스와 정사를 가지던 날 독일군의 폭격으로 건물은 무너지고 벤드릭스는 벽돌 아래에 깔렸다.

사라는 무신론자였지만 순간 신을 찾아 기도를 올린다. 이 남자만 살려주면 불륜을 청산하고, 정욕의 희열을 희생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런데 기적처럼 벤드릭스는 살아났다.

사라는 영적 경험을 통해 이성과 감성, 사랑과 신앙이라는 정신적인 갈둥과 투쟁의 상황 속에 빠지지만, 신과의 약속대로 불륜관계를 청산하고 신앙생활에 전념한다.

갈등 속에서 병을 앓고 있던 사라는 비가 쏟아지는 날 벤드릭스의 요청으로 재회를 했는데, 젖은 몸으로 집에 돌아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사라의 죽음 이후 벤드릭스는 사라의 남편 헨리와 화해하고, 사라를 뺏어간 신과 화해했다.

“오, 신이시여, 당신은 뜻대로 하셨나이다. 당신은 나로부터 뺏아갈 만큼 뺏았습니다. 저는 사랑을 알기에는 너무나 지쳤고 늙어버렸습니다. 저를 영원히 홀로 두시기를 바랍니다.”

소설은 벤드릭스의 이같은 기도로 끝을 맺는다.

소개한 대목은 1부 6장에 나온다. 벤드릭스는 매우 이성적이고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20여 년 동안 1주에 닷새씩 매일 평균 500자를 썼고, 1년에 소설 한 편을 쓸 수 있다. 그 안에 원고 수정을 하고 타이프로 교정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라를 만난 뒤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동안 주고받은 수많은 말들이 머리를 휘감는다. 그래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 그동안 의식의 심연에 자리 잡던 작가적 상상력과 열정은 이제 연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대신했다.

작품은 사라와 벤드릭스의 불륜을 다루고 있지만, 그 불륜의 결과 신앙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영화 <달마야 놀자>가 그린 것처럼 선과 악은 그리 선명하게 구분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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