瀛洲吟社 漢詩 連載(영주음사 한시 연재)-17

淸秋吟(맑은 가을에 읊다.)

▶漢農 夫順子(한농 부순자)

 

淸秋雁陣白雲橫 (청추안진백운횡) 맑은 가을 기러기 떼에 흰 구름 가로 놓이고

窓外金風葉轉聲 (창외금풍엽전성) 창밖 가을바람에 낙엽이 구르는 소리라

五穀豊登黃色野 (오곡풍등황색야) 오곡이 풍년들어 황색의 들이니

詩人興趣四隣情 (시인흥취사린정) 시인들은 사린에서 흥취의 마음이라

가을이 깊어가고 있따. 하논에 벼가 누렇게 익었다.(사진은 오충윤 독자위원 제공)

◉ 解說(해설)

▶文學博士 魯庭 宋仁姝 (문학박사 노정 송인주)

이 시는 구(句)마다 일곱 글자로 구성되어 있고, 起句(기구), 承句(승구), 轉句(전구), 結句(결구), 즉 4구로 이루어져 있어서 칠언절구(七言絶句)라고 한다. 칠언절구의 운자는 1, 2, 4구의 마지막 부분에 배치한다. 칠언절구의 평측(平仄)은 지금까지 연재해 왔던 칠언율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시의 첫 구의 두 번째 자가 평성이면 칠언절구 평기식, 측성이면 칠언절구 측기식이 된다. 7언절구는 총 28글자로 짧아 순간적인 느낌과 감회를 읊기에 좋다. 그리고 7언절구시는 7언율시와 달리 시를 짓는 형식적인 제약이 조금 느슨하다. 예를 들자면 7언율시는 함련과 경련에 반드시 대구(對句)를 만들어야 하는데, 절구는 그런 제약이 없다. 그리고 율시의 경우는 시의 제목 글자가 5자 미만일 때는 그 제목의 글자를 함련과 경련에 쓰면 범제(犯題)이기 때문에 금하는데, 절구 시에는 그런 까다로운 형식적 제약도 없다.

위의 시는 1구의 두 번째 자가 평성이라 칠언절구 평기식의 시이며, 운자는 1, 2, 4구의 마지막 글자인 橫(횡), 聲(성), 情(정)이다. 시상을 일으키는 1구에서는 맑은 가을 하늘에 한가로이 날고 있는 기러기 떼와 흰구름이 가로 놓인 모습으로 시각효과를, 2구에서는 낙엽이 가을바람에 구르는 소리를 나타내며 청각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轉句(3구)에서는 가을 들녘이 황금물결을 이루며 곡식들이 풍성하게 익어가는 모습을 언급하고 있고, 마지막 결구(結句)에서는 눈에 가득 들어오는 맑은 가을날 풍경에 시인의 흥취가 도도한 모습을 노래하며 시를 마무리하고 있다.

아래에서 부순자 선생의 ‘중양(重陽)’ 시 한 수 더 보기로 하겠다.

 

重陽(중양)

金風到處發黃花(금풍도처발황화) 금풍이 부는 도처에 국화꽃 피고

廣野秋光日漸斜(광야추광일점사) 넓은 들 가을빛에 해가 점차 기우네

好景陶翁深酒興(호경도옹심주흥) 좋은 경치에 도연명은 주흥이 깊었는데

寒蛩重九亂吾家(한공중구난오가) 중양에 찬 귀뚜라미 내 집에서 어지럽게 우네

 

이 시도 위의 시처럼 칠언절구 평기식의 시로, 운자는 花(화), 斜(사), 家(가)이다. 이 시의 제목은 중양(重陽)으로, 첫 구에서는 중양절에 향기를 발하며 피어난 노란 국화를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2구에서는 시야를 넓혀 들의 맑은 가을빛과 점차 서쪽으로 기우는 가을 저녁의 풍경을 언급하며 시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 시의 1, 2구에서 시인은 景(경)을 읊었고, 3구에서는 시의 흐름을 전환하여 도연명, 즉 사람을 언급하며 시의 전개에 변화를 주고 있다. 도연명은 국화와 술을 사랑했던 시인으로 그의 <飮酒(음주)>시를 보면, 도연명이 국화꽃을 따서 술 위에 띄워 마시는 내용이 들어 있고, 남조(南朝),  단도난(檀道鸞)의 《續晉陽秋 속진양추》에 보면, 도연명이 중양절에 술이 없어서 집 옆의 국화를 따서 손에 가득 쥐고, 국화꽃 옆에 쓸쓸히 앉아있었는데, 그의 친구 왕홍이 백의를 입은 술 심부름꾼을 시켜 도연명에게 술을 보내왔다는 내용이 있다. 위의 시를 쓴 부순자선생은 도연명의 <飮酒 음주>시의 내용과 《續晉陽秋 속진양추》에 실려 있는 도연명의 고사를 이미 숙지하고, 이 시에 국화와 도연명을 언급한듯하다. 시 속에 이런 옛 고사를 인용하는 것을 用事(용사)라고 하는데, 이런 용사를 시에서 활용하면 시의 내용을 한층 깊고 풍부하게 한다.

마지막 구에서는 寒蛩(한공)을 언급하고 있다. 寒蛩(한공)은 늦가을의 귀뚜라미를 말하는데, 寒蛩(한공)을 글자 그대로 풀어서 해석하면 ‘차가운 귀뚜라미 또는 서늘한 귀뚜라미’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귀뚜라미가 고요한 뜰에서 때론 슬픈 듯 때로는 하소연하듯 울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쓸쓸한 가을을 느끼게 된다. 이런 생각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닌 듯하다. 唐代, 韋應物의 <擬古詩>를 보면 “寒蛩悲洞房(한공비동방)”이란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늦가을에 귀뚜라미 우니 잠자는 방에서 슬퍼지네’라고 해석할 수 있다.

도연명은 중양에 술을 보내준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주흥(酒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작가의 집에서는 차가운 귀뚜라미 소리만 들리고 있다. 이 두 부분은 분위기가 대조적이다. 앞부분에 주흥(酒興)이 있기 때문에 뒷부분의 寒蛩(한공)이 만들어 내는 대조적인 분위기가 한층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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