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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집과 자유로운 창녀 사이 왕복하는 가장

기사승인 2019.10.22  10: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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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로 고전 맛보기(23)] 업다이크(John Hoyer Updike)의 <달려라 토끼(Rabbit, Run)>

Ruth and Janice both have parents: on this excuse he dissolves them both. Nelson remains: here is a hardness he must carry with him. On this small fulcrum he tries to balance the rest, weighing opposites against each other: Janice and Ruth, Eccles and his mother, the right way and the good way, the way to the delicatessen and the other way, down Summer Street to where the city ends. He tries to picture how it will end, with an empty baseball field, a dark factory, and then over a brook into a dirt road, he doesn't know.

*fulcrum : 지랫대의 받침점 *delicatessen : 델리카트슨(조리된 육류나 치즈, 흔하지 않은 수입 식품 등을 파는 가게) *brook : 개울

루스와 재니스는 부모가 있다. 이런 핑계로 그는 두 여자에 대한 책임을 해결한다. 결국 넬슨이 남는다. 그가 보살펴야 하는 난점이 있다. 이 작은 지레 받침점 위에서 그는 서로 반대로 작용하는 나머지의 무게를 잡아야 한다. 재니스와 루스, 이클레스아 그의 어머니, 바른 길과 유리한 길, 델리카트슨(식료품 가게)로 가는 길과 시내가 끝나는 썸머가로 가는 다른 길 등. 그는 텅빈 야구장과 어두운 공장, 개울을 건너 더러운 도로로 가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상상해본다. 그는 알 수가 없다. 

<달려라 토끼(Rabbit, Run)>의 주인공 해리는 평온한 가정이 주는 안정을 거부하고 창녀와 동거를 시도한다.(사진은 pixabay 제공)

존 업다이크(John Hoyer Updike: 1932-2009)는 1932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실링턴시에서 태어났다. 현지에서 공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에 입학해 영문학을 졸업했다. 1955년부터 2년 동안 문학잡지 ≪뉴요커≫지의 스탭으로 활동하며 단편소설과 에세이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는 1959년에 <구빈원의 축제일>을 발표하며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이듬해에 <달려라 토끼(Rabbit, Run)>를 발표해 미국 문단에서 지위를 확고히 했다.

2차 대전이 끝나자 미국에는 전쟁의 경험을 토대로 수많은 작품이 쏟아졌다. 전쟁의 비극과 그 속에서 유린당하는 참상을 고발하는 작품들이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동시대 미국의 많은 작가들은 전쟁과 군대 등에는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사회 속에서 ‘보이지 않는 인간’으로 존재하는 미국인의 불안한 위치를 조명하는 작품들도 등장했다. 보수적인 대중사회의 일원으로서의 군중 속의 고독을 그리는 작품들인데, 소위 ‘순응의 시대’를 그린 것들이다.

<달려라 토끼>는 큰 전쟁이나 공황이 없는 20세기 중반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해리 앵스트롬(Harry Angstrom)은 세일즈맨인데 주로 취사용 도구를 판촉하고 다닌다. 고교시설 유명한 농구선수였는데 그에 걸맞게 190cm 넘을 만큼 키가 크다. 현재 26세인데, 평소 코를 실룩거리는 버릇이 있어 ‘토끼’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해리가 생활하는 펜실베이니아주 브류워시는 안정되고 조용한 곳이다. 그는 이 평온한 도시에서 처자를 거느리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해리는 그 평온을 견디지 못한다. 고교시절에는 촉망받던 농구선수였으나 현재는 스스로 인생의 낙오자임을 인식하며 가정과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려 안간힘을 쓴다. 밤새 차를 몰아보기도 하고 우연히 알게 된 밤거리의 여자 루스와 동거를 해보기도 한다.

그런데 목사와 아내, 자식들은 다시 이 따분한 가정으로 그를 끌어들이려 하고 해리는 이에 순응한다. 해리는 아내 재니스가 출산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돌아왔고, 가족을 성실하게 돌보며 살 것을 다짐한다. 순응이란 안정된 사회에 사는 현대인에게 강요되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해리는 집에 돌아온 후 아내 재니스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는데, 재니스는 출산후유증을 이유로 이를 거부한다. 그는 이내 다시 집을 나와 동거하던 루스에게로 돌아갔다. 이에 아내 재니스는 절망하고 술을 마신 상태에서 갓 태어난 딸 레베카를 목욕시키다 그만 욕조에 빠트려 익사시키고 만다.

해리는 이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고 레베카의 장례를 치르던 중 다시 집을 나와 루스에게도 돌아간다. 루스는 임신 사실을 알리며 해리에게 결혼할 것을 요구하고, 해리는 부담을 느끼고 루스를 떠난다.

해리는 이렇듯 가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원하며 가출을 하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이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체계를 부정하는데서 나타나는 행동이다.

이렇듯 1,2차 대전을 겪은 후 서구사회는 신에 대한 믿음도, 과학과 이성에 대한 신뢰도 잃어버렸다.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고 회의와 불안이 확산됐고 삶은 공허해졌다. 이때 실존하는 개인은 보편적 가치나 도덕, 윤리가 가리키는 삶의 양식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유롭길 원한다. 하지만 자유를 찾아 떠난 곳에는 늘 또 다른 구속이 도사리고 있다. 순응과 도피 사이를 진자처럼 왕복하는 게 현대인의 숙명이다.

소개한 대목은 소설의 종결부에 등장한다. 아내 재니스와 정부 루스에게서 도피할 생각을 품고 있다. 그래서 둘에게는 각기 부모가 있다는 핑계를 대며 책임을 회피한다. 다만 아들 넬슨에 대한 책임이 남는데, 아들을 가운데 두고, 순응과 평온함, 도피와 자유 사이의 균형을 찾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공장과 야구장은 당시 미국인들의 삶을 지탱했던 산업과 대중문화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 큰 도로에 이르면 어떤 미래가 기다릴 지 알 수 없다. 책임과 도덕, 종교 등 모든 굴레를 거부하는 인간은 항상 불안하고, 그래서 도피에는 망설임이 따른다.

장태욱 taeuk30@naver.com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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