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입니다’ 전시회 13일 예술의전당에서 개막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한 사람들.(사진은 장태욱 기자)

제주 식물학의 선구자 에밀 타케(한국명 민덕효, Emile J. Taquet) 신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전시회가 13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개막했다. 주제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입니다’이다. 천주교 제주교구와 제주역사문화진흥원이 전시회를 주최했고, 제주자치도와 서귀포성당이 후원했다. 전시회는 오는 22일까지 이어진다.

오랫동안 에밀 타케 신부의 삶을 그림으로 소개했던 정미연 작가를 비롯해 강정효 사진작가와 박안자, 라티니테 아그네, 이승수, 전영일, 전홍식, 허정숙 작가 등이 전시회에 참여했다.

정민연 작가는 ‘제주에서 부활하신 에밀 타케’와 ‘제주 온주밀감을 축복하다’ 등을 포함해 6개 작품을, 강정효 작가는 제주 봉개동에 자생하는 왕벚나무 사진을 전시했다. 그리고 이승수 작가는 시멘트와 생활쓰레기를 재료로 빚은 조각상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전시했고, 허정숙 작가는 그림 ‘탐라동화’를, 전홍식 작가는 ‘구원(SALVATION)’을, 전영일 작가는 스테인레스‧한지‧조명 등으로 만든 조형물 '생사(LIFE AND DEATH)'를 전시했다.

개막식.(사진은 장태욱 기자)

또,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정진성 교수는 에밀 타케 신부가 제작한 식물 채집본을 함께 전시했다. 타케 신부 채집본은 원래 에딘버리영국왕립식물원에 소장됐는데, 이창복 박사가 대여 형식으로 국내에 반입한 것이다.

13일 오후 5시에 열린 개막식이 열렸다.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과 문창우 부교구장, 황태종 천주교 제주교구 선교사목위원장, 부영호 서귀포성당 주임신부, 오충윤 타케신부 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 이왈종 화백, 김찬수 (사)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등을 비롯해 천주교 신자와 예술가 등 70여 명이 참석했다.

강우일 주교는 개막식 축사에서 “에밀 타케 신부님이 세상을 떠난 지 67년이 됐는데, 신부님이 제주의 식물들을 채집해서 표본을 남기셨는데 실물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교회가 너무 가난하고 빈약해서 식물을 채집해서 외국 식물학계에 보내서 약간의 수입을 얻으신 게 식물채집을 하신 시작이었는데 그 과정에 제주의 자연에 누구보다 빠져서 제주의 벚꽃을 세상에 알리고 또, 감귤은 일본에서 도입해서 제주감귤산업의 기틀을 다지셨다“고 말했다.

강우일 주교는 “이번에 타케 신부의 생애와 업적을 여러 작가님들이 잘 묵상하시고 좋은 작품들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른쪽 벽에 있는 작품은 정미연 작가의 '제주 온주밀감을 축복하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이승수 작가의 작품 '어디로 가야 하는가'. 버려진 플라스틱으로 시멘트 몸속을 채웠다. 일회성 소비로 자연과 환경이 파괴되는 세상에 인류의 생존방안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에밀 타케 신부는 1873년 10월 3일, 벨기에 국경에 가까운 프랑스 노드 주에서 출생 1892년 9월,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공부하고 1897년 9월 사제서품을 받았다.

1898년 1월 선교사로 조선에 입국해 54년 동안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내고 1952년 1월 7일 대구신학교에서 입종했다. 그는 조선에 있는 동안 대구에서 교육자로 31년을 지냈고, 제주도에서 선교사와 식물채집가로 13년을, 목포와 나주 지역을 포함해 섬들과 내륙의 수많은 공소에서 7년을, 부산과 진주, 마산에서 3년을 지냈다.

이 기간, 쇄국정치로 쇄락해가는 조선 말기 농민들의 겪는 극심한 가난을 함께 극복하고자 했고, 식민치하에서는 민족 공동체 안에서 구원사업을 펼쳤다.

타케 신부는 1902년 4월 20일 마산포를 떠나 서귀포 하논성당에 도착해 3대 주임신부에 부임했다. 1902년 6월 27일에는 폐쇄적인 하논성당을 버리고 홍로본당으로 이전했다. 1901년 발생한 이재수의 난의 영향으로 천주교가 쇄락의 길을 걷던 상황에서, 타케 신부는 제주 천주교 부흥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뿐만 아니라 제주의 자생식물을 조사해 세계로 알리는 역할을 한 것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당시 타케 신부가 채집해 표본이 7047점에 이를 정도로 세계 식물학 역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그 가운데는 한라산의 왕벚나무를 채취해 표본을 만들 후 유럽에 보낸 일은 이후 전세계 왕벚나무 자생지가 제주도임을 알리는데 결정적인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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