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교실 운영하며 취학 전 영재들 발굴한 한공민 원장

현승민, 양유준 군을  발굴한 한공민 원장을 지난 27일 만났다.(사진은 강문혁 기자)

최근 감귤가격이 폭락해 서귀포 시민들의 삶이 크게 위축된 가운데도 청소년들이 들려주는 승전보가 크게 위안을 주고 있다. 서울대 의예과에 합격한 변규진 군,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현승민 군, 그리고 16세에 프로기사로 입단한 양유준 군이 전한 낭보는 경기침체로 풀이 죽은 시민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다.

그런데 현승민, 양유준 군을 어린 시절부터 가르쳤다는 사부(師父)가 있다. 최근까지 서귀포시내에서 바둑교실을 운영했다는 한공민 원장인데 27일, 양유준 군의 아버지 양동일 씨와 함께 한 원장을 만났다.

한 원장은 1993년, 33세 나이에 바둑을 처음 배웠다. 어릴 때 배워도 실력을 늘리기 어려운데, 늦게 시작해 바둑교실을 운영하며 뛰어난 제자들을 발굴했다. 한 원장은 “난 누구에게 바둑지도를 받아보지 못했는데,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도 배우게 된다는 것을 체험했다”고 말했다.

한 원장은 2001년에 서귀포에 바둑교실을 개원해 18년 동안 바둑을 통해 아이들을 만났다. 한 원장은 “돈을 벌려는 목적이 아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에 보람이 있었다”라며 “그동안 정말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나왔다”라고 말했다. 그 대표적인 인재가 현승민과 양유준, 원재훈 군 등인데, 이들의 공통점은 남다른 집중력이다.

현승민 군에 대해서는 “당시 국내에 적수가 없었다. 6세 때 이미 뛰어난 자질을 보여 5대 천재라 불리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한 원장에 따르면, 현승민 군은 6세에 바둑교실을 다니기 시작했고, 발군의 기량을 선보여 국내 바둑계의 주목을 받았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상경해 바둑도장에서 훈련을 받기 시작했는데, 서울에 가더니 좀체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 원장은 “어느 날 승민이가 전화로 ‘선생님 한번만 올라와 주세요’라는 부탁했다. 그래서 대국장에서 먼발치에서 지켜만 봤는데, 안정감을 얻었는지 처음으로 우승을 했다”라고 말했다.

현승민 군은 이후 전국소년체년 2년 연속 우승 등 좋은 기록을 써나갔지만, 프로 입단에는 실패했다. 도장에서 아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결과다.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서귀포로 돌아와서 공부로 전향했는데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서울대 경제학부에 입학한 후 최근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 합격했다.

양유준 군의 아버지 양동일 씨(좌)와 한공민 원장(우)(사진은 강문혁 기자)

양유준은 바둑에 입문하고 1년 만에 전북 부안에서 열린 조남철배에서 저학년부 결승까지 진출했다. 7세 나이로 초등학생들을 물리치고 결승에 진출한 것은 이세돌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서귀포에서 한 달 5만 원 내고 수강하는 아이가 서울 도장에서 한 달 100만원 내고 프로기사의 지도를 받는 훈련생들을 차례로 물리친 것이다.

한 원장은 현승민 군과 양유준 군을 지도하면서 부모들에게 유치원에 보내는 대신에 도서관을 보내도록 했다. 아이들은 6세, 7세에 유치원에 가지 않고 도서관에서 책과 놀았다. 기술은 한계가 있는데, 지혜를 통해 그 한계를 넘어야 한다는 게 한공민 원장의 지론이다.

한 원장은 “난 바둑실력은 프로 바둑기사들에 비하면 형편이 없다. 그런데 프로 지도자들이 나를 찾아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을 문의하기도 한다”며 “주입하지 말고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게 내 교육법이었다”라고 말했다.

양유준 군은 16세 어린 나이에 프로에 입단한 만큼, 지금부터 스스로 고독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지금까지보다 더 고된 여정이 유준 군을 기다리고 있다.

한 원장은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부모에게 어리광부릴 나이에 유준이는 고독한 승부의 세계에 서야 했다. 그나마 할아버지나 손자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서울로 방문해서 응원을 해주는 게 큰 위로가 됐을 것이다”라고 말한 후 “더 독한 마음을 먹고 견뎌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원재훈 군도 한 원장이 발굴했는데 지금은 서울 도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데 프로 입단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 원장은 최근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바둑교실 운영을 중단한 상태인데,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본업으로 복귀한다는 계획이다. 한 원장은 “바둑교실은 제주시에 네 군데 서귀포에 한 군데 있는데 운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라며 “아이들이 보습학원을 다니다보면 바둑교실 다닐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바둑을 배우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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