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23일, 故 김유나 양 추모 식수

 

김유나 양을 기리며 심은 동백꽃.(사진은 장태욱 기자)

태어나자마자 췌장에 이상증세를 보이고 당뇨까지 앓았던 미국인 소녀가 한국인 장기기증자의 도움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미국인 소녀는 이식수술을 한 후 4년 만에 기증자의 고향 제주를 찾았다. 장기를 기증한 소녀는 이 세상에 없고, 소녀의 맑은 영혼은 붉은 동백꽃으로 효돈동에 피었다.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 이하 본부)가 23일 오전 11시 제주 서귀포시 효돈동에 위치한 라파의 집에서 故 김유나 양 추모 식수식을 진행했다.

김유나 양(당시 19세)은 미국 유학 중이던 지난 2006년 1월,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모 김제박, 이선경 씨는 딸을 잃은 슬픔을 뒤로하고 새로운 생명을 위해 딸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부모의 숭고한 결정으로 故 김유나 양의 심장은 33세의 소아과 의사에게, 폐는 68세 남성에게, 오른쪽 신장은 12살의 소년에게, 왼쪽 신장과 췌장은 19세 소녀에게, 간은 2세의 영아에게, 각막은 77세의 남성에게 각각 이식됐다. 그리고 조직 기증을 통해 캐나다와 멕시코 등지에 있는 환자들에게도 삶의 희망을 선물했다. 스튜어디스가 꿈꾸던 열아홉 제주 소녀의 생명나눔은 미국과 한국에 감동을 전했다.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故 김유나 양의 신장과 췌장을 이식받은 동갑의 이식인 킴벌리 플로레스(Kimberly Amber Flores) 씨를 한국으로 초청했다. 미국 텍사스주 피닉스에 살고 있는 킴벌리 플로레스 씨는 지난 17일, 어머니 로레나 플로레스 씨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킴벌리 씨와 유나 어머니 이선경 씨가 함께 나무에 물을 주는 장면이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부모님은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다가 울음을 터트렸다.(사진은 장태욱 )
리본 매달기(사진은 장태욱 기자)

킴벌리 씨는 2살 때부터 당뇨병으로 인해 오랜 투병 생활을 해왔다. 그리고 18세가 되던 무렵에는 당뇨합병증으로 신장이 모두 망가져 혈액투석기에 의존해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 그런 그녀에게 유나 양의 장기기증은 기적과도 같은 선물이었다. 이식 후 건강을 회복해 작년 11월에는 결혼에도 골인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지난 20일, 오전 김유나 양의 부모 김제박·이선경 씨와 킴벌리와 로레나 씨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킴벌리와 로레나 씨는 유나 양의 어머니 이선경 씨를 만나 “유나는 나에게 신장과 췌장 뿐 아니라 새로운 삶을 선물해줬다”며 “유나는 항상 내 안에 살아있다”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킴벌리 모녀는 22일은 마침 로라 플로레스 씨의 생일이기도 했는데, 유나 양 보모와 함께 생일파티를 열기도 했다. 이후 23일에는 제주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유나 양의 흔적을 찾았다. 유나 양이 생전 버킷리스트로 작성했던 ‘월정리 바다 가기’ 등을 가족들과 함께 한 뒤 효돈동에 있는 라파의 집을 찾았다

23일 오전 11시에는 라파의 집에서 많은 취재진이 보는 앞에서 식수식이 열렸다. 유나의 4주기 기일이기도 한 이 날에는 킴벌리 씨와 그의 어머니 로레나 씨, 유나 양의 부모 김제박·이선경 씨 등이 함께 동백나무를 꾸몄다. 동백나무의 꽃말은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이다.

이들은 생명나눔을 상징하는 초록 리본을 동백나무 가지에 매달았다. 그리고 유나 양의 부모와 킴벌리 씨 모녀는 유나 양을 추모하는 글귀를 써서 나무에 달았다. 그리고 각자 유나 양에게 보내는 편지를 작성해 낭독했다.

킴벌리 씨는 “유나, 당신이 내게 준 놀라운 사랑에 감사합니다. 하늘에서 늘 영면하기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킴벌리 씨는 남편이 전한 메시지도 전했다. 킴벌리 씨 남편은 “유나, 당신의 사랑으로 인해 내 아내가 건강을 찾게 되어 감사합니다”라며 “당신으로 인해 나도 행복합니다”라고 말했다.

로레나 씨는 “유나, 당신의 사랑은 많은 이들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당신은 내 딸을 당뇨와 신장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줬고 생명을 살렸기 때문에 내 인생의 영웅입니다”라며 “천국에서 편히 쉬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어머니 이선경 씨는 "사랑, 희망을 남겨준 소중한 유나의 소중한 선물, 희망을 두고 살아갈 분들이 앞으로 건강해질 날을 기약하며 유나가 지켜주길 바라며, 사랑해"라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버지 김제박 씨는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보고싶고 그립고 세월이 흘러도 이 아픔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라며 “엄마, 아빠 잊지 말고 동생들 잘 돌봐주길 부탁한다”라고 말했다. 어머니 이선경 씨는 편지를 읽다가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